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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적 본성
  연구과 (산상설교) - 6 과
현대사회에서 도덕적 능력의 결여를 나타내는 징후 가운데 하나는 이혼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평균 세 쌍 가운데 한 쌍은 이혼으로 끝나버린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분명히 일반적으로 결혼에 대한 현대사회의 태도와 특히 성 문제에 대하여 비극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가 산상설교 가운데서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말씀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 육체욕망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결혼에 대해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성애'와 '사랑'이란 용어를 흔히 혼동해서 씁니다. 신약성서에서 '성애'로 번역된 희랍어는 이기적이며 무절제한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6:12의 경우가 그러합니다(롬 6:2). 어떠한 종류의 충동이거나 그것이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지배할 만큼 강해진다면 그것은 탐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성이나 행운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들이 인정하거나 하지 않거나 성이라고 하는 것은 젊은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리적으로 볼 때 성욕은 인간에게 있어서 두 번째의 비중을 차지할 만큼 강력한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가장 큰 욕망은 식욕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까닭에 선전 판매원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모자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물건을 팔기 위해서 이러한 본능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또 영화 제작자들은 결혼생활의 육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많은 청년들이 결혼의 육적인 면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서 난잡해진 그들의 자녀들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워하지를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계셨던 예수는 육체적인 욕망에 대하여 이와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그는 특유한 방법으로 외적 범죄행위를 방지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내적 인격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비록 간음하지 않았을 지라도 마음속에 음욕을 품고 있다면 그는 자기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는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인간의 본능을 정죄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무시하는 종교는 허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성에 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으나 한 번도 이러한 성적본능을 나쁘다거나 죄스럽다고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본능을 자제하지 못할 때 그것은 "탐욕"이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어떠한 본능이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격을 지배하게 되면 이때에 그 본능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성을 마치 죄스럽고, 더럽고, 부정한 것인 것처럼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의 엄청난 과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이 그의 자연적 본능을 충족시키는 태도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적 본능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본능에 있어서도 적용이 됩니다. 첫째방법은 사회의 계율을 무시하고 자기의 본능을 무제한으로 만족시키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자기의 불행과 소외를 가져오게 됩니다. 자기의 욕망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노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땅히 자기의 종이 되어야 할 세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적 욕망에 대한 두 번째 태도는 그것을 감추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는 사람은 그 욕망을 나타내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시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심리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욕망을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묻어 둠으로서 의식하지 못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적 본능을 억제해 버리면 이것이 잠재의식적 행위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비정상적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의사들은 억제된 감정과 기억이 신경장애의 경우처럼 여러 가지 신체적 기능이 마비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정신적 문제도 가져오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처리하는 세 번째의 방법은 그것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은 욕망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기가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욕망을 나타내거나 은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욕망을 은폐하는 것보다는 더 건전한 태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자기에 대해서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본능을 처리하는 네 번째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욕망을 시인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교정합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한 직장에 두 사람의 노처녀가 있다고 합시다. 그 중의 한사람은 결혼하기를 원치도 않거니와 여태까지 자기의 마음에 드는 남자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내적 감정과 상반되는 행동을 합니다. 그녀는 자기의 품위를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자기 곁에 오는 모든 남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남자들에게 있어 그녀는 쾌락의 수단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임을 그들이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욕망을 은폐하는 경우입니다. 그녀는 사실을 정직하게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한 여성은 결혼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아는 까닭에 자기가 여태까지 결혼 못했음을 섭섭하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모든 열정을 자기 사업에 바칩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건강한 정신을 소유하게 되며 선한 사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기의 본능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생산적이며 적극적인 사업에 몰두하게 되는 사람의 표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는 이 가운데 어느 방법을 가르치셨습니까? 분명히 예수는 우리가 자기의 욕망에 의해서 지배를 받거나 혹은 우리가 이러한 자연적 본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가 이러한 제목을 강조하신 까닭은 분명히 문제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본능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다음의 성구 속에 요약되었다고 보겠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내 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이 성구에서 예수는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며 그것을 완전히 이겨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 성구에 바로 뒤이어서 탐욕스러운 본능과 인간의 성적요구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욕망을 정당하게 충족시킬 수 없을 때는 결혼을 통해 이 욕망의 수렁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교훈입니다. 만일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 그 본능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부분을 읽지 않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의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지체 중에 어느 부분이 죄를 범케 한다면 그 부분을 잘라서 던져 버리라고 예수께서 권고하십니다. 이 원칙은 우리의 성욕뿐만 아니라 그밖에 어떠한 욕망에 있어서도 적용이 됩니다.

금주를 단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술 마시는 장소와 사람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 분야에서 그의 욕망을 승화시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직업으로 인해서 나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불가피 하다면 차라리 그 직업을 내어 던져 버리는 것이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유익할 것입니다.

미혼자에게 있어 이것은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책감이나 이루지 못한 욕망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그러한 환경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교훈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행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이러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주어지는 효과는 지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심리학자들이 이러한 교훈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더욱 행복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더 높은 하나의 국면을 발견 할 수 있게 된다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 이혼
이혼의 문제는 간음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가 이 두 가지 문제를 계속 언급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5:31-32)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시대에도 이혼 문제는 참으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 중에 어느 사람들은 간음이 이혼의 유일한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랍비 힐렐의 교훈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아내가 남편의 저녁식사를 잘못 준비해도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그들은 이혼을 아주 쉽게 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현대의 어느 지역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이혼이 거의 상습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녀자들은 자기가 섬겼던 남편들의 수효로 시간의 흐름을 측량했다고 합니다.

이혼에 관한 예수의 교훈은 막10:3-9에 더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모세의 율법이 이혼을 허락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사람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 남자는 그의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결혼하고 둘이 한 몸으로 되는 것입니다.(막10:6-7)

그러므로 이혼은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음욕의 문제성을 강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간음은 음욕의 표현이요, 이혼은 그 결과입니다. 여기서 예수는 현대의 심리학이 발견해 낸 신뢰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여자가 돈에 탐욕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여자가 돈 없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거의 실패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녀가 사회적 지위나 아름다운 용모를 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여자가 결혼 후에 자기의 욕망을 성취할 수 없게 된다면 그녀에게 있어 그 결혼은 성공했다고 볼 수 없겠습니다. 어느 남자나 사회적 지위나 사업상의 성공을 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아내가 이점에서 내조할 수 없다면 그는 머지않아 그녀와 이혼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예수는 이혼의 근본적인 이유로 사랑의 부재를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의 모성애를 포기해 버린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호세아는 이러한 형태의 사랑이 결혼에도 적용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아내가 자기에게 진실치 못하더라도 그는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그녀를 다시 권면하고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모든 남녀가 예수의 산상설교를 통해 가르쳐 준 부성애를 간직한다면 이혼의 문제는 쉽게 해결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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