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ID저장
비밀번호     








  
   
  행복에의 열쇠
  연구과 (산상설교) - 2 과
산상수훈에 나오는 첫 번째 용어가 '행복' 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 단어가 '축복' 으로 번역되었으나 그것은 또한 고린도전서 7:40 에서와 같이 '행복'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행복' 이라는 용어가 팔복 속에 나오는 '축복' 이란 단어를 대신하여 쓰여졌다고 하면 우리는 예수께서 행복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는 강력한 비결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들은 도덕적 원리나 윤리적 계명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생애를 통해서 이러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풍요한 삶을 발견할 것입니다.

◑ 탐색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행복을 찾아내는 방법에는 사실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자기의 모든 소원을 만족시켜 주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때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자기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자기의 성향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비결로 올바른 정서적 태도의 성장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진리가 그의 모든 교훈 속에 반영되어 있고 보통 우리가 팔복이라고 하는 여덟 가지의 원리 속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이러한 태도를 키워 나간다면 그는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간에 행복해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토의하기 위해서 마태복음 5장에 나타난 순서와는 다르게 하나씩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신앙의 4가지 원칙을 취급할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의 4가지 원칙을 고찰해 볼 것입니다.

◑ 마음이 가난한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나온 무리들은 재물이 행복의 조건이 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빈곤은 세상의 비참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물질적 빈곤과 정신적 빈곤이 서로 같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은 피차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자기 만족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의 좋은 예로서 자기의 옛 곡간을 헐고 더 크고 좋은 곡간을 지어서 추수한 곡식을 넣기로 결심한 농부를 들 수 있습니다.(눅12:16-21) 이 농부는 어떤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완전히 자기 만족과 자기 긍정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그토록 강조하신 바 마음이 가난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나약함을 압니다. 그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앞으로 성취해야 할 더 많은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는 현재의 성취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 앞에 놓여있는 더 큰 승리를 바라봅니다.

마음이 부한 자와 마음이 가난한 자의 큰 차이점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자기가 영적으로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비유는 그가 자기에게만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자기가 영적으로 부유하다는 사실로 인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와 반면에 세리는 자기의 영적 빈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나약함을 시인했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대체로 영적으로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경을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독선적이고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며 자기가 한 일은 틀림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만하고 교만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바리세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본적인 욕구가 자기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는 성취감 입니다. 마음이 부유한 사람은 자기가 처해있는 현실에 만족하기 때문에 성취를 위한 야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개선의 여지가 없고 그들의 인격은 침체해 버리고 맙니다.

반면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더 높은 것에 대한 꿈을 가집니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 만족하거나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성취를 자극합니다. 이것은 행복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배우기를 힘쓰고 꾸준히 더욱 좋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할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2-14)고 했습니다. 빌립보서의 가장 중요한 단어가 '기쁨' 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 영의 목마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6).
왕성한 식욕은 건강의 증거가 됩니다. 먹지 못하는 사람은 병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쁜 음식을 먹거나 불규칙한 식사를 하게되면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 굶주림에도 적용이 됩니다. 의에 주리지 아니하면 사람은 영적으로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가 장차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꿈이 자기의 이러한 영적 굶주림의 상태를 자극시키지 않는 한 그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 전에 먼저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영적인 양식을 갈망하지도 않으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금식이 우리의 굶주림을 둔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영적인 금식도 영의 양식을 갈망하는 욕구를 둔하게 만듭니다.

예수가 말씀하신 의는 적극적인 덕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생겨난 태도입니다.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 애쓰는 부모의 열심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의 좋은 예가 됩니다.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즉, 그들의 자녀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세계를 갈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들에게 영적 세계를 갈망하게 될 때에만 행복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예수는 영적 계명에 대한 복종을 요구합니다. 의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표현되는 방식은 다른 복들에 대해 생각할 때 취급될 것입니다

◑ 온유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마 5:5)
'온유' 라고 하는 용어는 불유쾌한 뜻이 내포된 것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특히 미국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유가 우유부단하고 개성이 없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온유한 사람은 타인의 주장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기가 그들에게 흡수당해 버리는 나약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산상수훈을 통해서 예수가 가르치신 태도가 아닙니다.

온유의 뜻을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온유의 실례를 몇 가지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중에도 가장 훌륭한 예를 주님에게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을 때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기도를 통하여 온유의 훌륭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이 온유입니다.

모세는 온유의 다른 예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순간부터 그는 거의 승산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고생을 면하기 위해서 자기의 임무를 포기하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한 번의 예외가 있기는 하나 그는 항상 자기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에 예속시켰습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온유는 우주의 법칙을 믿는 확고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과학자는 온유한 태도로써 자연을 취급해야 합니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배우려고 자연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자연으로부터 배우기 위해서는 우주를 다스리는 법칙 앞에서 그 자신이 겸손해야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온유는 우주의 법칙을 믿는 신앙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섭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익하게 하려고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신앙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썼을 때 온유한 태도를 나타내었습니다.

온유는 배우기가 쉽지 아니 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게 하려는 유혹이 많이 있고 인간의 본성은 율법들을 무시하고 싶어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가 없을 때에도 그것을 신뢰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고통을 가져올 지라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고통과 번뇌를 참아 낸 욥은 온유한 성품의 좋은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행복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킬 줄 아는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찾을 것이고 진실로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라도 이 한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자기를 헌신하게 됩니다.

◑ 마음의 청결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의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청결도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르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의가 그러한 것처럼 마음의 청결 또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덕을 의미합니다. 청결한 물은 병균이 없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좋은 물이 되기도 합니다. 청결한 음식은 단순히 독이 없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우리 몸에 영양을 공급하고 활력을 주는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은 단순히 죄와 악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마음의 청결은 사랑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음의 청결은 사람들에게서 최선의 것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청결한 마음속에는 의혹과 불신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는 사람들속에 최선의 것을 보셨습니다. 베드로의 충동적인 성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가 그를 반석이라고 다시 이름을 지어 주신 것이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초대교회에서 훗날 하나의 큰 기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그에게서 찾아 내셨습니다. 마음의 청결은 분명히 아버지의 사랑을 지니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식들에게서 가장 좋은 장점을 찾아냅니다. 그는 자식들의 결함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들 속에 들어 있는 장점을 알고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는 자식들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잘 압니다. 마음의 청결과 반대되는 것은 의혹과 불신의 태도입니다. 타인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는 자기생활 속에 큰 들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지니고 있는 티끌을 쉽게 비난합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결함을 찾아내기란 특히 쉬운 일입니다. 남을 사랑하지 못할 때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청결한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에게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 또 그것을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아버지가 그의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남을 사랑한다면 그들은 자연히 청결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그와 더욱 깊은 교제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다' 고 하는 희랍어의 뜻은 누가복음 2장 26절에 번역된 것처럼 '체험' 으로도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살아있는 현실적 체험이 됩니다. 봉사의 생활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과 친숙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약속된 축복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교육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교육은 이러한 행복의 원리들을 어린이들의 생활 속에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가난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훌륭한 교육자는 결코 어린이가 자만심을 갖도록 기회를 주지 않고 더 높은 세계의 꿈을 갖도록 지도해 줍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배우는 것이 하나의 특권이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상급이 된다는 것을 암시 하므로서 그의 자식으로 하여금 의에 굶주리게 합니다. 배우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은총이 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그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확실하게 믿도록 함으로써 온유한 마음을 가르칩니다. 그는 자식에게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일에 힘쓰도록 함으로써 청결한 마음을 가르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타인의 결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려함으로써 올바른 본을 보여주고 그의 자녀들로 하여금 본인이 없는데서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시킵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결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멀리하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정을 베풀도록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 올바른 신앙은 큰 힘이 됩니다. 이 네 가지의 행복 속에 내포된 생활의 원리들은 단순한 지적신앙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전적으로 변화 될 것을 요구합니다. (롬 12:2)
페이지 설정에서 여백 크기 조절 후 인쇄하세요.
   

BCC 소개 | 뉴스레터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TOP ▲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4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