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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인격
  연구과 (산상설교) - 12 과
제자를 찾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인생철학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독자적인 인생관과 어린이의 양육법에 대한 이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그러한 견해들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가 있겠습니까? 과학은 "그들을 분석 검토"해 보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5-16)

산상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는 가치 기준의 선택 문제를 취급하셨습니다. 15절은 거짓 선지자를 진단 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구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명한 광고업자들은 잡지의 화려한 인쇄물로 독자들을 현혹시킵니다. 사기꾼들은 비싼 대가를 받고 '행복의 비결', '인기를 획득하는 법', '남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비결' 따위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거짓과 참을 어떻게 하면 구별할 수 있을까요? 우선 거짓 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그들은 지도자임을 스스로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은 지도자가 아니라 추종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 자신을 '무리들'의 대변자라고 자처합니다. 왜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해 올까요? 우선 이 거짓 선지자들은 인간의 욕구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나온 거짓 선지자는 지도자로서의 자기의 능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군중들의 자만을 충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군중들로 하여금 바로 그들 자신이 지도자이며 자기는 그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임을 믿게 함으로서 군중들의 허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를 분간하기 위한 첫 번째 기준은 군중들에게 호소하는 수단의 성격입니다. 만일 사람들의 허영심에 호소한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선지자일 것입니다. 또한 공포, 분노, 증오, 탐욕, 혹은 의심이 호소의 수단이 된다면 이것도 역시 '양의 옷'을 입은 이리의 징조일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정체를 시험하는 두 번째의 기준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의 업적입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 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6-20)

동양인들은 관상용 수목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 있는 일입니다.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 없애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뿐만 아니라 무가치한 나뭇가지로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아무 업적도 남기지 못하는 무골호인을 두고 비유할 수가 있겠습니다.

선지자는 그가 전하는 설교의 효과에 의해서 심판을 받습니다. 만일 그의 설교가 번민과 불안 및 불행을 가져오게 한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선지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를 따르다가 그의 불안전한 성격으로 인해서 불행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사실을 우리가 봅니다. 만일 거짓 선지자가 "가시와 엉겅퀴"라면 그의 추종자들도 드디어는 그와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거짓 선지자들이 반드시 악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성실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실성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여기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민중의 지도자이거나 고등교육을 받은 자 일수 있습니다. 그들은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가서 후하게 연보를 하고 구제사업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주신 교훈의 영적 진리를 거부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의 어리석음은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1-23)

우선 도덕적 행위의 원칙을 배우고 그것을 나중에 실천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교훈을 지적으로 받아드리기는 하되 그것이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에 실천에 옮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사람들은 실천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에만 의존해서는 축구와 스케이트와 야구를 배울 수 없습니다. 실천 없이 예수의 교훈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교훈을 지적으로만 받아드리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허공 속에 그의 인격을 구축하려는 태도와 다름이 없습니다.

지적으로만 동의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결과가 주어질까요? 그가 받아드린 가치의 기준 위에서 행동하지 않을 때 어차피 그는 또 하나의 다른 윤리적 규범에 의해서 행동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규범에도 의거하지 않고는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질 때 우리는 거기에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반응은 공포, 분노, 환희, 쾌락 혹은 사랑이거나 이러한 탐정의 교차일 수도 있겠습니다.

가치의 기준을 갖고 있거나 없거나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어떠한 가치의 기준을 채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는 비록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을 준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생애가 평탄하고 순조로울 때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겠지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그는 또 다른 가치의 기준에 따라서 살 것입니다. 그의 신앙생활은 피상적인 흉내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평탄하기 때문에 관념의 유희를 즐깁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 정당하게 평가되는 때는 그의 삶이 험준하고 불행해질 때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표면적으로는 따르는 듯이 행동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사물을 하나님처럼 섬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장사가 잘되고 번영할 때에는 행복한 삶을 즐기고 만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이 실패하고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가 고백한 신앙은 사나운 광풍 속에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가 불행해 지면 하나님을 저주해 버립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삶이 모래 위에 건축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약한 기초 위에는 튼튼한 건물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튼튼한 기초를 놓음으로서 튼튼한 건물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마 7:24-25)

예수를 인생의 안내자로 삼고 그의 행위로서 예수의 교훈을 받아드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무서운 폭풍이 불어오더라도 그는 능히 이겨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에게 굳건한 성품과 인격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튼튼한 기초 위에 놓고 교육시켜야 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어린이에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이러한 법칙을 따라서 살기만 한다면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이 우주가 하나님 아버지의 피조물인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들로 하여금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튼튼한 기초 위에서 그들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려면 그들은 예수의 생활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구세주에 대한 어린이들의 지식이 대부분 부모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을 안다면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그들이 건전한 영적 진리에 따라서 살도록 도와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권면 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 자신이 크게 기뻐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 수년간 도덕적 규범에 관해서 배우는 것보다 그들 자신이 한 번 남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서 얻는 유익이 더 클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여기서 '놀래다'는 것은 단순히 '경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감명, 혹은 인상을 받다'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예수는 궁극적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교훈은 모든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요구를 충족시켜 주실 수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조지 와싱톤이나 아브라함 링컨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믿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도 그것을 믿도록 강요하는 과학자가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구태여 권위에 호소해서 학생들을 설득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유인력의 법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그러한 진리의 법칙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을 때 그것이 하나의 권위나 위대한 종교적 교사들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원수에 대한 사랑까지도 강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건전한 인격형성을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이것은 예수가 가르치신 인식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영적 진리를 생활 속에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청중들이 놀란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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