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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등의식
  연구과 (산상설교) - 11 과
당신은 어떤 사람의 신경이 몹시 예민하거나 혹은, 또 어떤 사람의 경우 몹시 잘난 체 하고 뽐내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보신 적이 없습니까? 실상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똑같은 심리적 갈등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이러한 심리적 갈등에 의해서 생겨나는 현상이 몇 가지 더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허영심, 질투심, 시기심, 불안감, 약한 자 앞에서 뽐내기, 남의 소문 퍼뜨리기, 비꼬는 태도, 공동생활에서 기피하려는 태도, 아첨하기, 혼자 떠들기, 남을 함부로 경멸, 혹은 모독하기, 호전적인 태도, 불신감 등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열등의식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식욕의 본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태도입니다. 완전한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열등의식에 빠져 버립니다. 사람에 따라서 표현의 차이는 다양할지 모르나 열등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는 이 문제와 관련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비결과 불안감 대신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의 황금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적용시킬 수 있는 원칙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열등의식이 도저히 들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열등감을 연구한 결과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자기의 약점을 숨기면서 그 반대되는 장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어 하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보상행위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키가 작아서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큰 음성과 다변을 자랑함으로서 보상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자기의 키에 관해서 말하게 될 때는 모독감을 느끼게 됩니다.

◑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장의 서두에서 예수는 열등의식을 보상하기 위해서 생겨나는 몇 가지의 비정상적인 행위에 관해서 논의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 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는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여기서 '비판하다'로 번역된 단어의 함축적 의미는 '외곡 되게 비판하지 말라' 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결점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열등의식을 보상하기 위한 행위 가운데 가장 비정상적인 태도는 "다른 사람의 신상에 관해서 수군거리는 것" 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위치를 높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자기의 개인적 성취를 통해서 품격을 높이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자기의" 이웃을 격하시킴으로 자기가 상대적으로 높아 질려는 것입니다. 그의 이웃을 깎아 내림으로 그는 무의식적으로나마 자기가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남을 험담하는 목적입니다. 험담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은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로 인해 높아졌다고 생각되는 자기의 신상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기보다 낮은 사람을 험담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험담은 대체로 자기와 사회적으로 같은 신분에 속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집니다.

험담의 특징 가운데 또 한 가지는 험담의 내용이 대체로 험담하는 사람 자체가 지니고 있는 결함에 국한된다는 사실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것을 투사작용이라고 부릅니다. 자기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정직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정직한 행위까지도 부정직하게 봅니다. 거짓말쟁이는 결코 다른 사람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열등의식을 이러한 방법으로 보상하면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것은 '실패' 입니다. 자만에 가득 차 있고 뽐내기를 좋아하며 건방지고 오만한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격하시킴으로 자기의 품격을 올려 보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다만 다른 사람을 자기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험담에 관련해서 자기의 열등의식을 보상해 보려고 하는 방법 가운데 또 한 가지는 다른 사람을 비판함으로서 관심의 소재를 딴 데로 돌려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에 관해서 예수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3-5)

여기서 다시 예수는 그의 풍자적인 교훈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기 눈에 들보가 들어있는 사람이 이웃사람의 눈 속에 들어있는 조그마한 티끌을 뽑아내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우스운 장면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열등의식은 도덕적 능력의 결함 때문에 자극을 받습니다. 그는 자기의 범죄행위를 부끄러워하고 그것이 남에게 탄로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도 자기만큼 부도덕하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 자기의 허물을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흠 밖에는 찾아내지 못합니다. 남을 중상하는 경우와는 달리 다른 사람을 자기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난 사람에게는 공연히 우월감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기의 눈에 들어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발전해 가면 결과적으로 엘머 간트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은폐하기 위해 광신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에게 수백만 원의 부도수표를 남발하면서도 공립학교의 자그마한 비위사실에 대해서는 선봉에 나서서 신랄하게 공격했던 사업가로 이런 경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사소한 교리의 문제로 교인들의 관심을 돌림으로서 자기의 성격적 결함을 은폐해 보려는 전도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는 이런 사람들에게 먼저 그 자신의 들보를 뽑아버리라고 충고하십니다. 자기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분석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그는 자기의 특유한 방법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헤치셨습니다. 그가 정리하신 것은 외적행위가 아니라 내적 마음의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의 허물을 제거해 버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남을 험담하거나 남의 허물을 찾아내려고 애써야 할 이유를 갖지 않아도 좋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나약함과 결함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면 우리는 구태여 남을 비방함으로 그들을 깎아 내릴 필요도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뽑아내기 위해 우리가 진력한다면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티끌을 뽑아낼 틈이 없게 될 것입니다.

◑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열등의식을 보상하는 세 번째의 방법이 있습니다. 인기를 추구 하려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사람들 속에 섞이기를 싫어하는 청년이 있다면 이것은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것과 같은 경우가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기 있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젊은 세대 가운데서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들은 인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인기를 추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이상을 내던져 버립니다. 그들은 이상을 버린 대가로 인기를 획득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것이 얼마나 무상하고 변덕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어느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등의식에 의해 생기는 또 한 가지의 태도는 숙명론과 비관주의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낙제를 하게 된 학생은 자기의 태만을 반성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선생을 비난하기가 쉽습니다. 파산 당한 실업가는 그렇게 된 책임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 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하나님의 전능을 믿는 사람은 결코 열등의식이나 비관주의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존중하면서도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신앙을 갖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가 구한 것을 받는다거나 찾던 것을 찾게 된다거나 혹은 문을 두드린다고 반드시 열린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약속은 그의 기도는 반드시 선한 응답을 가져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용기가 있거나 혹은 용기 있는 것처럼 꾸미거나 어차피 그는 자기가 의존할 대상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비정스럽고 잔인한 우주의 한가운데 던져진 자로 자기가 의존해야 할 대상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게 되면 그는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때에 그는 인생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자가 되어서 결국 그가 '고기'를 구하지만 '돌멩이'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따위의 태도가 모두 열등의식에서 나온 현상들입니다. 열등의식을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단히 간단합니다. 예수는 우리 눈으로 비추어 볼 때 '돌멩이'와 '뱀'으로 보이는 사물이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자녀들에게 선한 옷만을 주시는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시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떡' 대신에 '돌덩이'로 받게 되면 그 '돌덩이'의 뜻을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덩이'는 사랑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교훈의 정신은 어느 무명의 용사가 쓴 기도문 속에 완전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병사의 십자가"란 제목의 기도입니다. 그는 성취를 위한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으나 약한 자가 되어서 복종을 배웠습니다. 그는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기도했으나 병을 얻어서 더 좋은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재물을 달라고 기도했으나 빈곤하게 되어서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는 사람에게서 찬양 받기 위한 권력을 달라고 기도했으나 무력한 자가 되므로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 모든 것을 간구했으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을 얻었습니다. 그는 구한 것을 하나도 갖지 못했으나 그가 소망했던 모든 것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의 기도는 이루어져 누구보다도 훌륭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관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은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위험한 생각을 고치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되겠습니까? 예수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이 계명대로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잘못된 해석을 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러한 태도입니다. 즉 "남이 너희에게 하는 대로 너희도 그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하신 예수의 교훈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분노를 분노로 갚고, 증오를 증오로 갚으려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예수의 이러한 교훈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열등의식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처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쁜 습관이 있으면 그것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어 버리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한 공익사업에 종사하느라고 바쁜 사람에게는 자기의 염려와 불안이 뒷자리로 물러나고 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한 결과로 얻어진 성취는 자기를 사로잡고 있던 모든 열등의식을 없애 버리고 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예수의 마지막 경고는 넓고 평탄한 길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좁고 협착하다'는 구절은 '경사가 급하고 뒤틀어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길을 찾기도 힘들고 그리로 가기도 어렵습니다. 이 길을 찾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또 하나의 다른 길은 "평안하고 매혹적인 길"이 아니라 "넓고 평탄한 길" 입니다. 예수의 교훈은 행복의 비결이 바로 위에 소개한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데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은 자기의 결함과 비열한 조성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좁은 길은 찾기 쉽지 않으나 그 길만이 생명으로 이르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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