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ID저장
비밀번호     








  
   
  기도의 능력
  연구과 (산상설교) - 8 과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영적 능력의 위대한 원천 가운데 하나, 즉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앞장에서 논의된 예배의 다른 형식과 마찬가지로 기도에 있어서도 그 동기를 잘못 이해함으로서 영적 능력을 고갈시켜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가 바리새인의 기도를 정죄 하신 것은 그들의 잘못된 동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가 기도 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 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 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5-8)

어떻게 기도를 드리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오래 전부터 논의된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기도할 수 없음을 느끼고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현대인들도 갑자기 위기에 직면하게 될 때 기도를 드리고 싶으나 그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그는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하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 왜 기도를 드려야 하나?
기도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기도의 동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기의 욕구를 간구하면 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마치 그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유치한 견해가 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기도제목은 이러한 것입니다. "주여 당신이 베풀어주신 축복을 감사드리나이다. 모쪼록 간구하오니 그 축복을 더 많이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러한 종류의 기도와 예수의 기도를 비교해 볼 때에 비로소 그들의 기도가 부당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역경에 처해 있을 때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치 않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영적 능력을 함양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기도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해결 못하는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면 또 기도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경건을 남에게 보이려고 금식하거나 구제하는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상급은 피상적인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를 권면 하셨습니다. 기도는 자기의 마음속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은밀한 기도"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중언부언해야 그들의 기도가 상달되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는 "주여, 주여!" 하고 외치기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그 자신이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공적 기도에서 그의 기도는 간결하고 의미 깊은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혼자 계실 때는 밤새도록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기의 기도를 예수의 기도와 비교한다면 자기의 기도가 얼마나 이기적이며, 다변적이고, 무책임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받은 축복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만 하는 유치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인격의 성화를 빌고 천국의 계시를 간구하며 영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능력을 간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능력의 필요성을 깨닫는 사람만이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주여!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가 기도의 본을 가르쳐 주셨을 때 기도의 축자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말도록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암송하므로서 어떠한 마력이 발생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 것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기도로 인해서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그는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데 필요한 마음의 자세를 간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의 모범적 기도는 기도드리는 사람의 성실성과 마음의 깊이를 요구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적 결함은 기도를 드리는 일에 심각한 방해가 될 것입니다. 가령 어느 사람에게 성을 내고 있으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하고 기도드리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원한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합소서' 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기도드리는 자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기도의 서두에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인정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그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의 창조물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차라리 잠자코 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한 기도의 응답을 믿지 않는다면 성실하게 "우리 아버지시여" 라고 부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한다면 예배드리는 자와 하나님 사이에 놓여진 무한한 간격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의 호인적 존재로만 이해하고 그를 우주의 보존자나 창조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라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전능의 고백입니다. "거룩하게 되다"란 단어가 우리에게 잘 이해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이 구절을 더 적절하게 번역한다면 당신의 이름을 성스럽게 하옵시며 혹은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오며' 가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고유명사에는 반드시 특정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자식의 불의한 생활이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힐 수가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빛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신이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간구는 예배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 자신의 생활을 성별하겠다고 하는 약속이 되기도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마 6:10)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기는 쉽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부성애에 대한 신앙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실한 마음으로 이러한 기도를 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좌절과 패배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우주의 모든 세력이 그를 적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불행이 하나의 운명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까지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린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는 자기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을 아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그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 기도의 다음 부분을 기도드릴 수 있기 위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에 대한 똑같은 신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1)
많은 사람들이 사치와 쾌락과 재물을 갈망 할 뿐 아니라 기도드리는 사람은 대개가 더 많은 축복을 베풀어 달라고 빌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주의 기도는 일견 시시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아는 사람은 "양식"이라고 하는 단어가 우리의 물질적 욕구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단순한 물질적 양식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에는 물질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영적 사물에의 지식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여섯 명의 학생들을 맡고 있는 성경학교 교사는 그의 양쪽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걸머지게 됩니다. 그에게는 예언자적인 영혼양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빈혈증에 걸린 사람은 그의 영혼을 먹일 수 있는 영적 양식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임을 무겁게 느낄 것입니다.

누가 양식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부자는 자기가 필요한 양식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양식 때문에 기도 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만이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성실하게 기도드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의 주인은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가르치신 교훈의 뜻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아마 이것은 고난에 의해서 영적 능력을 키워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자신의 영적 빈곤을 아는 까닭에 진정으로 양식을 위해서 기도를 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니고 있는 최대의 장애 가운데 하나는 교회 신자들이 영적으로 가난하지 못하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태도가 어찌해서 두려움을 몰아내게 되는가 하는 것은 단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박해나 고난을 능력의 잠재적인 원천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러한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태도를 지니게 되면 그는 파괴적인데서 건설적인 태도로 발전해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박해와 고난을 위대한 축복의 원천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여하한 폭풍 속에서도 파멸 당하지 않는 능력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패배를 승리로 삼게 될 때 우리는 이미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의 풍성한 응답이 주어진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물질적 성공으로서만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면 그는 불행한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파산 당한 사업가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그가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그의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음을 의미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문제를 내어 맡기고 그를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실망과 낙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조건 가운데서도 그는 용기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6:12) 그의 설교에서 예수는 이 말씀의 뜻을 부여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것은 단순히 죄를 묻어 달라고 하는 요청이 아니라 영적 갱신을 위한 능력을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이러한 능력을 받지 못합니다. 남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의 태도는 언제나 어두운 그늘로 주름 잡혀져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용서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남을 용서해 줌으로 배워지는 영적인 성숙에 도달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용서하는 마음도 부성애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식의 죄를 용서 못해주는 아버지가 있을까요? 자식의 간청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어코 정죄해 버리는 아버지가 있다고 하면 그는 악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는 자식을 용서해 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완전한 표본이 됩니다. 남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해 지기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마 5:48)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예수의 교훈가운데서 두 가지 시험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의 시험은 나쁜 목적을 위해서 어느 사람의 능력을 사용하려는 시험입니다. 광야에서 당한 예수의 세 가지 시험이 그 예입니다. 두 번째의 시험은 어느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사명을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가 하신 기도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그의 권면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 굴복하는 사람은 그들의 타고난 능력을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쓸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의 모든 능력을 주인의 뜻에 따라서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의무를 이행치 못하면 용서를 빌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생의 첫째 되는 목적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실패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험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올바른 영적 태도에 의한 능력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성애를 가르치신 예수의 교훈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여러 가지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으로 무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성애를 믿기 전 까지는 여러 가지의 위험이 자기를 두렵게 해줄 것입니다. 악의 세력은 얼른 보기에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이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확신으로 인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자가 된 것을 알고 위로를 받을 것이며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롬 8:38-39)
페이지 설정에서 여백 크기 조절 후 인쇄하세요.
   

BCC 소개 | 뉴스레터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TOP ▲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6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