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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과 빛
  연구과 (산상설교) - 4 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로부터 자기를 격리시키고 사회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불신자들과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기독교적 원리는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인류 역사상 소금에 관한 얘기는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예수가 사시던 당시에 동양에서는 소금이 너무 귀해서 병정들이 그들의 임금을 소금으로 받았습니다. '사람은 그가 가진 소금의 분량대로 평가된다' 는 말과 같이 "봉급"이라고 하는 단어는 이 사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소금이 오늘날 보다 더 가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방부제가 소금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소금은 방부제로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조미료로서도 쓰여졌습니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것은 그의 제자들에 대해 지극히 높은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높은 이상을 보존하며 또 자기들의 영향력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생활에까지 향기를 품어주는 역할을 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소금의 특징 가운데 또 하나는 소금은 그 자체를 녹임으로서만 그 기능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그것이 다른 물질 속에 들어가서 그것이 맛을 내게 하고 그것이 썩지 않게 보존할 때에만 가치가 있습니다. 녹아서 쓰여지지 않는 소금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방부제와 조미료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소금이 이러한 자기의 역할을 잃어버리게 될 때에는 이것이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쳐줍니다. 우리는 소금을 내어다 버리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금이 떨어지는 곳에는 녹이 슬고 윤택한 빛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길 위에 소금을 내어버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두 번째 말씀은 빛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소금과 마찬가지로 빛도 그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게 될 때에는 그 자체의 목적을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빛이 사람의 눈 바로 앞에서 찬란하게 비추기만 한다면 그러한 빛의 기능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빛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지 않을 정도로 비추어 줄 때라야 유익한 빛으로서의 가치를 나타낼 것입니다.

예수가 여기서 하신 말씀의 교훈은 예수를 따르는 신자라면 누구나 이기적인 생활을 버리고 남을 위해서 사는 이타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나 시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때론 자기가 너무 교만하게 사람들 앞에서 빛을 발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가리워 버립니다. 이것은 자기의 빛을 등경 아래에 둠으로써 아무에게도 자기의 빛을 발하지 않는 경우와 똑같은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를 그리스도인들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의 일상생활 속에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업적인 전도자나 부흥목사들만이 그들의 빛을 나타내면 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이것은 예수의 교훈과 전혀 다릅니다. 그는 자기가 종사하는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소명
교만은 전도자들의 직업적인 장애물 같이 보입니다. 길을 찾아 갈 때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는 강렬한 빛과 마찬가지로 전도자는 가끔 너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 되어서 그의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빛을 밝힐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만을 반사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예수는 사업가, 노동자, 가정주부 및 여러 가지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가 가르치신 계명을 따라서 살기만 한다면 그는 과거의 어떠한 전도자 못지 않게 그리스도를 위해서 선한 사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종사하는 직업의 핵심은 산상설교의 뒷부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 말씀을 우리의 직업에 관련시켜 해석한다면 '너희는 개인적인 이익추구를 위해서 직업에 종사하지 말고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하라'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로 하여금 신앙을 가진 사업가, 신앙을 가진 법률가, 신앙을 가진 의사, 기술자 및 신앙을 가진 노동자가 되도록 애쓰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 불도저를 운전하는 사람은 전도자가 강단에서는 결코 접촉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생활의 전반에 걸쳐서 자기의 꿈을 상실하지 않고 그뿐 아니라 그들의 영향력과 그들의 도덕적인 시범을 통해서 타인으로 하여금 높은 이상을 갖게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소금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선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빛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해 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소명을 받은 존재임이 확실해 질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행1:8).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면 그것은 사방에 흩어져서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직업을 다만 생활의 영위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이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그들의 생활 속에 그리스도의 빛을 밝혀주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전도가 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때때로 권태롭고 귀찮은 직무까지도 흥미로운 성취를 위한 기회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최선의 능력에 대한 여러 가지의 도전을 체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생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풍성한 삶의 비결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효과적인 증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활 속에서 예수가 약속하신 행복의 조건이 되는 삶을 키워나가지 않습니다. 밝은 빛을 전파하는 대신에 그들은 불행하고 불만에 가득한 삶의 모습을 투영시킵니다. 불만에 가득 차서 일그러진 얼굴이나 통렬한 비난으로는 결코 타인을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칭 의롭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경우를 예로 드신 예수는 풍성한 삶의 기쁨과 가난한 삶의 불행을 대조적으로 설명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은 남에게 자기들의 경건한 모습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픈 얼굴과 엄숙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경건에 대한 예수의 비난을 주목해 봅시다.

금식 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저희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6-18)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남에게 호감을 주어야 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행히도 남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격의 중요한 조건은 앞에서 배운 생활태도 입니다. 육체미와 교양미는 하나의 부수적인 조건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은 결코 남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격의 본질적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매력적인 육체를 소유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봅니다.

지적인 오만을 가진 사람도 교육을 멸시하는 사람과 못지 않게 불쾌한 인상을 줍니다. 정서적으로 균형이 잡힌 사람은 자기의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교양미를 타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도록 하는 일에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자기인격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의 기질(성향)입니다. 기질은 한 사람의 인격을 결정하는 자세의 총화가 됩니다. 한 사람의 기질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태도 및 타인에 대한 자기의 태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태도가 되기도 합니다. 만일 어느 한 사람이 매사에 두려운 태도로써 임한다면 그는 소심한 기질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성을 내는 것이 습관화되어 버렸다면 그 사람의 기질은 악평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의 교훈을 따라서 산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의 품격 즉 행복한 사람의 조건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잘못을 반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아이들은 세 살이 되었을 때 자기의 기질을 형성하게 되고 또 자기를 가르친 선생이나 자기를 키운 부모에 의해서 기질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권면 속에 담겨진 지혜를 쉽게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지혜로운 부모는 자기의 자녀들에게 성서가 가르치는 마음의 태도를 가르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자녀에게 행복하고 풍성한 삶의 비밀보다 더 큰 선물을 줄 수가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이 얼마나 힘찬 물질들입니까! 예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 속에 내재하는 힘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러한 물질들을 사용 하셨습니다. 자기가 종사하는 직업의 귀천에 관계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타인의 마음속에 비추기 위해서 자기의 위치를 선용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 보람있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예수가 가르치신 삶의 자세를 키워나간 사람은 타인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격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호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불만과 슬픔의 기색을 일소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가르치신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정녕코 우리는 사람들 앞에 그의 빛을 비추이게 하고 그의 선한 사업을 봄으로써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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