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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 .  성경이 말하는 방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질문 : 2005-02-14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방언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또 방언 기도를 못하는 사람은 자신은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인가 하여 걱정하고 슬퍼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혼란이 없도록 성경에서 가르치는 기준을 알고 싶습니다.
  답변 : 2005-02-14
상당히 조심스러운 질문이군요...?

방언 말함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사도들에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이렇게 주님께서 예언하신 약속은 사도행전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보면 ①오순절 날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행 2:4)와 ②최초의 이방인으로 구원 받은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 사도가 말씀을 증거 할 때(행 10:46) 그리고 ③다만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뿐 성령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던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할 때도(행 19:6) 성령이 충만한 모습으로 방언을 말하는 모습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방언으로 번역된 언어는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위의 ①②③의 예들은 주로 고린도 전서 12, 14장에 나타나는 표현들과 함께 "글로사"[헬, glossa - 혀, 함축적으로 언어, 방언(행 2:4); (고전 14:5) tongue, language]으로 통역이 없이는 하나님께만 드려야 되는 영으로 기도 드리는 신비한 언어이며,

다른 하나는 "디알렉토스"[헬, dialektos - 대화의 한 모형 즉, 방언, 언어,(행 1:19), (행 2:6, 8, 11) language of people]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각국으로부터 와서 자신의 난 곳의 말로 복음을 이해했던 각 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대부분의 방언은 [글로사, glossa]가 대부분이고 질문 하는 대부분도 여기에 속합니다.

방언 은사의 내용과 사용의 방법은 고린도전서 14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 것을 살펴보면

대상은 하나님이며(2) 통역 없이 사람에게 하는 것은 야만이 됨으로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되 질서대로 하고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11, 13, 27~28)

교회에서 깨달은 다섯 마디 말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19)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22) 온 교회가 다 방언으로만 말하면 불신자들이 미쳤다 할 수 있습니다.(23)

[특히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덕과 질서입니다. 덕을 세우기 위하여(3, 4, 5, 12, 17, 26;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33;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40)]

오늘날 방언을 하는 교회들은 이러한 규범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쓰여지고 완성되기 전의 신약성경시대의 방언을 포함한 많은 은사들은 주로 증거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거나 사도들이 증거 한 하나님의 말씀의 진위를 확인 하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방언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의 많은 기적적인 은사들은 주로 말씀을 증거 하는 자격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5~18)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행 14:3)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히 2:4)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그러나 유독 방언은사의 문제뿐 아니라 신령한 은사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가 영적으로는 가장 혼란한 교회였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바울 사도께서는 은사를 가장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 사이에 가장 귀한 은사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원히 지속될 사랑과 함께 강조된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한 것인데 여기 ‘폐하리라’의 "카타르게오"[헬, katargeo]는 헬라어의 뜻은 ‘완전히 쓸모없게 하다, 폐지하다, 쉬다, 파괴하다, 소용없게 되다, 소멸하다, 헛되다.’ 라는 등등의 의미를 가지는 동사입니다.

같이 쓰인 예를 보면 (고후 3:11)에서 ‘없어질 것’으로 (롬 6:6)에서는 ‘멸하여’로 번역되고 있고 지금 하늘로부터 직접 오는 ‘예언’은 폐하여졌음이 확실하고 하나님의 은사들의 대부분이 기능이 완료되면 폐기 되는 것처럼 ‘방언’이 반드시 필요한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의 말씀은 부분적이었다면 오늘 우리가 가진 성경은 표적이나 은사가 아니라도 구원을 누리는데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한 계시의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도 역시 말씀을 신앙의 절대진리로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귀한 신앙의 자세라고 보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 하시며 말씀이 배제된 은사는 오히려 거짓일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나 그의 택하심을 받은 사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로 나타난 신약 성경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고, 말씀이 확고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믿음과 실행의 완벽하고 구비된 하늘나라의 명령이요 법칙입니다.

경계하여 결론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은사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것들이 기록된 말씀의 기준을 넘어서거나 지켜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거짓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에서 방언을 말하는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방언으로 기도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거나,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거나, 오래 기도할 수 있다거나 하는 내용은 각 사람의 감정의 차이일 뿐이지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고 방언 기도를 권장하고 있는 내용도 성경에는 없습니다.(오히려 경계 되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또 우리 모두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기도한다고 해서 영적인 기도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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