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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  죄의 유전(원죄론)에 대한 보충질문과 답변 (2)
  질문 : 2003-10-23
죄의 유전 문제, 다시 말해 원죄의 문제를 여전히 간과하고 계셔서 다시 제 의견을 말씀드리려 펜을 들었습니다.
원죄의 문제를 간과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에 바로 직면하게 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그 필연적인 이유를 해명할 길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와 상관없이 무죄하게 태어난다면 구태여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동정녀 탄생이라는 특별하신 방법으로 나게 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담의 죄를 안고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우리 구주 예수님을 죄와 상관없이 세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동정녀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두번째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경 속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여러번 기술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아브라함 때에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셨는데 거기에 무수한 영아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영아들이 무죄하다면 어떻게 영아들을 그 어른들과 함께 그렇게 무참하게 심판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말씀하신 에스겔서의 내용에도 그 아비의 죄값을 그 자식이 치르지 않을 것이라 하셨음에도 어른들의 죄악 때문에 죄없는 아이들까지 도매금을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같은 문제가 모세 시대 유월절 심판의 밤에 애굽 땅에서 또 일어났습니다. 장자를 죽이시던 그 밤에도 무수한 영아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과연 그들이 무죄한 가운데 그렇게 죽임을 당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다면 그렇게 무죄한 영혼들을 한꺼번에 수도 없이 심판하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당면하게 되는 문제는 영아의 구원문제입니다.
영아가 무죄하다면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필요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상관없이 영아시절에 죽은 모든 영혼들은 구원받게 된다는 말씀인데 과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그렇게 한정적으로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인지요. 제가 알기로 그리스도의 은혜는 모든 택하신 백성에게 미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옛적 이스라엘(구약시대)은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이 자의식을 갖기 전 단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게 하여 선민의 표를 갖게 하였고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도 그것을 본받아 영아세례를 베풀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제 개인의 주장만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최명용)
  답변 : 2003-10-24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사실 어떤 부분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로마서 3:10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창세기6:9에서는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하나님께서 선언 하셨습니다. 이 두 말씀을 어떻게 함께 이해해야할까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신 말씀은 아무도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의에 미치는 자가 존재치 않는다'는 말씀일 것이고 그러함에도 노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입장에서 "의인" 또는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물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말씀과 거기에 붙여주신 여러 말씀들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여겨지며 보수주의 신학을 견지하는 신학자들조차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여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것을 통해서 후세가 탄생하게 되는데 남자 없이 난자만으로 탄생시키는 것이 무죄할 수 있다면 요즈음은 사실적으로 유전자 복제로 남자 없이 피부의 부분만으로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있으므로 그렇게 탄생된 아이는 무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소지가 생길 수 있으며 이러한 입장에서 이해할 경우 죄를 유전 인자인 DNA 정도로 생각하게 하여 생물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남녀가 함께 자녀를 생산할 때 유전학적으로 남자의 경우도 물론이거니와 여자의 경우도 같은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마리아는 무죄한 인간인가(원죄를 인정할 경우 더욱 그렇지요)?"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이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의 무죄설(無罪說)을 만들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로 그 수많은 무죄하게 죽은 유아들은 어떻게 되겠는가고 물으셨는데 이것은 불신의 가나안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세가 태어날 때에도 남자아이는 낳자마자 나일강에 던져 죽게 했는데 그렇다면 이 어린아이들도 하나님께서 도매금으로 지옥에 우겨 넣으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공의입니까? 또 사람의 형벌이 육신에서 끝난다고 이해하시는지요? 최명용님께서는 신앙생활 하는 것 때문에 역사 속에 죄 없이 죽은 수많은(연령을 불문하고) 순교자들이 형벌을 당한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소돔성에서 의인을 찾으셨던 주님의 안타까움은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 성에서는 더욱 더 간절하셨습니다. 예를 드신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의인을 찾으시는 것' 자체도 원죄가 인정된다면 오히려 모순되지 않습니까?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나게 하신다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의인을 찾으시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우리는 공의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이 말씀은 적어도 하나님께서 묵시적으로 의를 인정하는 사람들(의와 죄가 무엇인지를 구별하는 정도의 차원이 아닌) 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해야 옳을 것입니다.

악인과 함께 죽임을 당하는 의인들의 역사는 역사 속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우리가 악인들과 동일한 육체를 가진 이상 얼마든지 이 땅에서 함께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며 '육체의 죽임 당함이 영원한 형벌이 아닌' 이상 이것은 반드시 저주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고 이해됩니다.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의롭게 고난 당하고 있는 욥도 자신의 고난을 한탄하면서 차라리 세상에 나오면서 죽는 것을 동경하고 있습니다(욥3:11~13, 16~19, 10:18~19).

영아의 무죄에 대비해서 지적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대한 질문에 관해서는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구약의 성도들에게 미친다는 사실(히 9:15)"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율법>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에서 구약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중심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지만 그 효력은 창세 이후부터 이 역사의 마지막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미치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단적으로 말하면 구원받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전제들 때문에 또는 잘못 가르쳐진 신앙 때문에 이 세상의 일만을 가지고 신앙을 판단하는 경향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세상의 삶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영원에 비교한다면 참으로 짧습니다. 또 세상에서 물질이나 건강의 복을 받은 것으로 신앙을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은 이 세상에서 다 보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신앙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세상에서는 육신으로 볼 때는 가련하고 처절한 삶을 살았습니다(히11:33~40).

유아 세례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구약의 할례와 더불어 생각하기 때문에 유아 세례를 주장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의 표징으로 받는 할례는 '본인의 의지나 의사와는 관련이 없이 행'해지는 반면에 세례는 반드시 '믿음과 회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할례와 같지 않습니다(행8:37).

여러 신앙의 지도자들을 말하기 때문에 한 분의 유명한 신학자의 주장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영국의 존 머래이(John Murray) 박사는 어린아이의 무죄성과 천국의 약속을 가진 자로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존 머래이, 기독교 세례론, 김소영역, 대한 기독교서회, pp. 79~86>.

결론적으로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조심해야할 것은 '어떤 사람의 기준으로 성경을 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신앙관(信仰觀)이나 생각을 '성경이라는 절대적 기준으로 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뀌면 반드시 문제와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성경이 말씀하는 곳에서는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는 잠잠해야 하는 것이 신앙의 바른 자세라고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많은 은혜가 함께 하심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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