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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은혜(charia)와 진리(aletheia) date : 2010-01-22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증거하고 주님께서도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선언 하셨다. 사람의 인격은 지정의(知情意)로 표현되며 신앙의 전인적(全人的)인 표현도 "온 영과 혼과 몸"(살전5:23)이다.
하나님께 있어서 은혜(恩惠)는 사랑의 측면이고 진리(眞理)는 공의(公義)의 부분이라면 사람에게 있어서 은혜는 정적(情的)인 즉 감성적(感性的)인 부분이며 진리는 지적(知的)인 즉, 이성적(理性的)인 부분이다.
신앙의 부분에서는 이 둘 중 어느 한쪽에 치우쳐도 옳지 않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머리를 써야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여 감정적인 부분에 많이 치우치는 경향이 있고 또 여기에 반발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너무 이지적(理智的)인 사람들로 남게 되지만 이 둘 다 편중(偏重)된다면 온전한 것이 못된다.
다시 신앙 속에서 사람의 인격을 고려한다면 은혜는 감정적(感情的)인 부분을 다루고 진리는 이성적(理性的)인 부분을 관장한다. 그리고 이는 신앙에 있어서 평행으로 가야하는 철로(鐵路)처럼 균형이 필요한 부분이고 이 둘의 조화 속에서 의지(意志)가 실현되어야 한다. 즉,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 삶이 실제적으로 움직여 가는 의지로 나타나야 한다.
사람의 이분설(二分說)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사람의 구조도 하나님의 형상인 영(靈)과 육(肉)이 만날 때 혼(魂)이 발생한다는 논리로 사람을 봄으로 결국 혼(魂)이라는 부분은 결과의 산물이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앞의 요한복음 1:14에서 "…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말씀을 보았다. 이 말씀을 오늘의 제목과 더불어 이해한다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할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될 것이고 사람에게는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이 된다.
또 은혜가 사람을 위한 방향이면 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측면이라고 볼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의 충족인 진리는 등한히 여기고 자신들을 위한 은혜의 부분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자세도 건전한 신앙에서 역시 옳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신앙에 있어서 이 양면(兩面)은 반드시 충족(充足)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은 사람을 인정하시고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금(現今)의 추세(趨勢)는 은혜를 더 중시한다. 그러나 은혜 즉, 선물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어야 함에도 은혜를 너무 중시하다보니 거짓된 은혜까지도 이 마지막 시대에는 난무하고 심지어는 진리에 치중하고 은혜 쪽이 약한 교회는 마치 하나님도 계시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까지 있다.
이런 영향하에서는 신앙적 판단도 기준을 잃게 되고 신앙적 확신도 쉽게 바뀌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것들조차 사실은 진리의 측면이 배제된 자신의 감정에서 오는 확신일 뿐이기 때문에 그런 확신은 감정의 기복(起伏)만큼이나 자주 수정될 수밖에 없다.
진리가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라면 은혜는 자주 형태를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우리의 객관적(客觀的)인 지식(智識)과 주관적(主觀的)인 감정(感情)의 차이로 이해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이 양면의 어느 부분도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는 영광을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끼칠 수 있었고 그 치우침이 없는 절정이 바로 십자가의 희생이었다.
이러함에도 주님께서는 오히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b~32)
바울도 복음을 변질시키는 갈라디아 교회를 보면서 이 둘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치우칠 수 없는 면모를 고백하고 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이렇게 영적인 사람일수록 은혜보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강조함이 특이하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진리(眞理)와 공의(公義)의 하나님을 뵈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恩惠)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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