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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교육 date : 2010-01-22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면 신앙훈련은 영원대계(永遠大計)이다.
우리는 소위 [쉐마-들으라] 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신앙 교육의 명령을 교육에 관련하여 자주 인용하는데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당부하신 후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고 당부하신다.
이 말씀을 보면 "네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이라는 전제가 5절이고 그러한 바탕이 되어 있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율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나눌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벤허] 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자신의 집에 들락거릴 때마다 대문 문설주 중간쯤의 공간에 넣어둔 양피지 두루마리 성경에 언제나 손을 대었다가 자신의 입술에 대며 간접 입맞춤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장면은 바로 쉐마의 실천을 습관적으로나 모형적으로 실천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습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넌 크리스천이긴 하지만 [레오 버스까글리아] 라는 남미의 유대인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마다 어릴 때에 부모들과 있었던 삶의 경험들을 회고하는 내용들을 자신의 책들마다 삽입하면서 율법 교육에 철저했던 부모들을 추억하곤 하는 것을 본다.
오늘 우리의 주변으로 이 논지를 가져와서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 날 교회생활을 하는 그것도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다고 하는 신앙 인들의 삶과 자녀 교육에서 이 이스라엘의 쉐마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 눈을 씻고 봐도 보기 힘들고 이것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참담한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아프다.
사회교육과 신앙 교육을 비교해 보면 그 비율은 최소한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6:1은 고사하고 퍼센테이지(%)를 따질 수조차 없다. 학교나 학원은 잠을 아끼면서 까지 보내면서 신앙교육은 어찌 보면 시간이 있어도 안 할 정도이다.
교회의 중책을 가졌다는 사람들조차 주님의 날 자녀들이 시험을 치르거나 시험기간일 때는 교회의 예배나 성경공부에 빠지는 것쯤은 예사로 여기고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안타까워하는 것은 학교 성적이 떨어지는 것뿐이다.
신앙교육을 위해서 과연 이 시대의 부모들은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 묻고싶다.
작금의 교육은 인성교육은 고사하고 영성교육은 전혀 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가정에서 가족간의 교제의 시간이 없고, 오로지 정글의 승자의 법칙만이 강요되고 있는 감마저 들고 더 이상 인간관계나 가정이나 신앙의 중요성은 저들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런 가운데서 오랜 시간 세상에 노출되어 있는 신앙의 자녀들이 세속화되기는 얼마나 쉬울까! 주워 듣는 것들은 욕소리고 저주뿐인 어두움의 다스림 아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조차도 저들은 주변의 소리에는 귀가 차단되어 있다. MP3 같은 것들을 귀에 꽂고 있으면서 전혀 다른 세계 그것도 시끄러운 소리에 붙잡혀 있어 주변의 어떤 소리와도 단절되어 있다.
이런 입장에서 긍정적인 미래의 사회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가정과 이웃과 교회라는 귀중한 관계를 잃어버린 세대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거기에는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이성 없는 동물들의 울부짖음과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법칙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비록 어려울지라도 순종한다면 우리 앞에 나타날 모든 장애들을 주님께서 능히 감당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신구약 성경이 줄기차게 말씀하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자녀들의 삶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것이 갖추어진다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회의 변화에도 넉넉히 이기고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것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소원해진 고독한 존재, 특히 하나님의 보호를 모르는, 오로지 허기짐만을 속히 해결하려는 에서(히12:16)같은 인간들이 난무하는 사회는 가인과 같이 자신이 인정되지 못함을 인하여 동생을 죽이는 비윤리가 윤리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여름한철 캠프다 성경학교다 하는 행사들이 세속화되어 있는 자녀들을 바꿔 줄 것이라는 착각은 애당초 버려야 한다. 이러한 이벤트는 지속적으로 신앙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만이 효과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자신의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지 못함을 가장 두려워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재산을 물려줘도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각성하고 하나님 두려워 할 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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