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ID저장
비밀번호     


  

           제목  :   까마귀와 까치 date : 2010-01-22   
우리 문화권에서 가장 편파적인 생각하나가 오(烏)작(鵲)에 대한 오해이다. 사실 이 새들의 차이점은 단순히 생김새의 차이일 뿐이지 먹이활동이나 사는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 때론 썩은 고기를 두고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모습도 본바 있다. 함에도 까마귀 소리에는 재수 없어 하고 까치는 아침부터 짖어대도 기쁜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비신앙인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까지도 일반적이다.
현재의 장소로 옮기기 전 과거의 예배당 옥상에 십자가 탑 철빔 사이에다 까치가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우느라 죽은 새나 짐승의 사체 조각을 떨어뜨려서 별로 기분이 상쾌하지 못했던 경험이 몇 번인가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노아의 홍수 후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창8:6~7)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비둘기는 까마귀 후에 내어놓았어도 땅에 물이 있기 때문에 결국 되돌아오고 말았지만 까마귀는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며 아마도 죽은 동물의 사체들에 앉아 뜯어먹느라고 그랬을 것이다.
성경에서 까마귀를 비록 부정한 새로 규정(레11:15; 신14:14)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엘리사에게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고(왕상17:4, 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까마귀조차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 말씀하셨다.(눅12:24; 시147:9)
심지어는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욥38:41)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도 접할 수 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의 어록(語錄)에서 "까마귀 울음소리와 방귀소리는 다름이 없다." 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실 새카만 까마귀의 외향과 투박한 지저귐이 사람들의 호감을 살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까마귀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까마귀가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당연히 다른 소리가 아닌 여전히 '깍깍'이나 '까욱 까욱'이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까마귀의 찬양을 들으면서도 찬양이 아니라 소위 재수 없는 소리로 들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편견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도 생각하게 된다.
옛날 까마귀가 짖어대면 재수 없을 것이라고 "퇘 퇘" 하며 침을 뱉는 시늉이 기억난다. 이것은 비단 까마귀와 까치의 새에게서 보는 것만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의 문화권에서 이 같은 자세는 그리스도인이 운영하거나 지은 건물에 4층을 붙이지 않고 영어의 F를 붙이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글자의 뜻은 차치(且置)하고 소리가 같다고 하는 이유에서 사(四)와 사(死)를 동일시하는 것을 무지라 할까 미신이라 할까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하나님의 각각 다른 피조물들을 왜곡됨이 없이 그대로 볼 수 있는 바른 신앙적 세계관을 정립시켜야 할 것이고 편향적인 것보다 자연 그대로를 봐주고 인정할 수 있는 보다 넓은 범위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끝임 없이 진보를 거듭해가면서 문화는 개선되고 사고(思考)는 변화해 가면서도 적어도 이런 부분에 관한 것들의 변화는 요원(遙遠)한 것을 경험한다.
우리의 사회 속에서 까치의 흑백이 조화된 아름다움을 기뻐한다면 까마귀의 조금은 음울한 소리도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키워 주심에 보답하는 찬양의 소리로 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쯤일까?


BCC 소개 | 뉴스레터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TOP ▲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0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