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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세상살아가는 이야기.
  질문 : 아카펠라 ( 2007-05-10 )   
저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그분을 믿기에 천국의 소망이 있고,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심도 믿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믿음은 있으나,  세상살아가면서 살아가는 생활지침서로서의 믿음에는 흔들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것입니다.  
좀더 설명을 드리자면,  살아가면서 예수님이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말을 듣곤합니다.  예수님이 이세상에 다시오셔서 자동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과연 화를 내실까(착한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성질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나를 화나게 하고 부조리라고 생각하게 할때, 주님의 멋진 대처방법이 무척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는것이 성경적인 삶의 모습일까?,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지구상에 살기때문에 겪게 되는 양육강식, 인간관계, 부조리 등등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대처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요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천당, 불신지옥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씀을 하십니다만,

세상살아가는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인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해 주실수 있으신지?   하나님은 저의 사소한 일에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으신지요?  있다면 그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40일 금식기도나 거룩한 성결의 모습을 지녀야만 그 뜻을 알수 있는것인지, 너무 어렵군요.  

주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정말 무슨 뜻인가요.  나의 보좌에 주님이 앉고 나는 그 앞에 내려와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주님이 저의 세상살아가는 생활지침자로서 역활하시기를 바라는데도 그 것이 쉽게 되지 않도록 하는것은 정녕, 인간의 탓이라는 말인지....(더욱 거룩해져야 가능하다는 뜻인지)      

물론 욥의고난이라던가, 믿는자가 만사형통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고난의 문제를 떠나서,  과연 생활지침서로서 말할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생활지침서를 각자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바라볼때 한번쯤은 이런 답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모든것을 아시는 주님이기에 그것만 믿고 살다보면 주님이 다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은 좋은 믿음인가요.
아니면, 주님이 다 이루어주기는 하지만,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고, 좀더 말하면, 인간의 노력이 없다면 거저 주님이 주시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것이 맞는 말인가요?

농담이지만,  주님이 이제는 숨어계시지 말고 즉각즉각 삶에 개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혹자는 그러면 살아남는 자가 없다고 하는데..
한번에 강타를 때리니까 살아남는 자가 없죠.
조금씩 여러번 약타를 자주 때려주시면 하나님도 좋고 인간들도 좋고 다 좋은텐데요.

한번에 강타를 때리니까. 된통 크게 당하잖아요..   하나님 오래 참으시지 마시고  자주 인간이 알아듣도록 쉽게 확실히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불신자들은 간혹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는 말을 하곤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 ~~

이런 노래도 있듯이 그냥 주님이 100% 이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00%
  답변 : 2007-05-10    
Shalom!

먼저는 의로운 고민을 하시는 님께 제가 과연 답변을 드릴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경외감마저 듭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실 듯도 하구요…

또 질문하신 것을 보면 이미 주님으로부터 답변을 다 듣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저도 주님의 말씀을 한 마디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

전체의 하신 말씀에서 예수께서 님을 통해서 사시게 하시면 될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가장 경멸 하셨던 대상은 당시에 이중생활을 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다고 이해됩니다. 쉽게 말해서 위선자들이지요…

종교와 세상을 분리해서 이중적인 잣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는 실제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산다면 어떻게 이중적일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회와 세상을 사는 법이 둘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만요…

주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3) 결국 거듭남을 위해서는 나 자신은 죽어 장례를 치른 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보화들이 제대로 보이고 그 영원한 보화를 위하여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투자할 수가 있겠지요!(마 13:44, 46)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운전하다가도 불신자들이 대응해 오는 방법과 꼭 같이 대응하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자신이 죽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아래 장사 지냈다고 하는데 불쑥불쑥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죽었다고 하는 옛사람이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또 모두가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되게 사는 것이 우리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죽어 장사 지낸 상태라면, 예수께서 나를 통해서 사시는 것이라면, 때로는 세상의 불이익도 기쁘게 감당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할 것이고요…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40일 금식기도나 거룩한 성결의 모습을 지녀야만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게 알고 계시는데 또 다른 무엇을 들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기도하고 말씀만 펼치면 쉼 없이 진리를 말씀하고 계시는데 무슨 특별한 계시가 필요하겠습니까?

때로는 주님을 제쳐두고 우리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시도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 순종뿐이지요…

세상적인 판단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것일지라도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나 “하늘도 무심하시지...”는 다 에덴을 떠나 짐승의 원리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살았던 우리를 주님께서 자신의 피를 지불하시고 그 절망과 소망 없는 짐승의 세계에서 우리를 끌어 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마 16:25); (눅 9:24) 하셨습니다.

죽으면 끝날 것 같은데 죽으면 주님께서 나로 통해서 사시고, 이 세상에서 불이익만 당할 것 같은데 종국적으로 죽은 나는 영원히 살고 이렇게 사는 우리 주위의 세상 사람들은 이 빛 때문에 자신들의 죄를 보게 될 것이고, 이렇게 사는 삶으로 주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산제사가 될 것입니다.

진실하면 못 살 것 같지만 사실 세상에 진실이 귀하기 때문에 임시로는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길게 볼 때는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만사형통은 복권 장사들의 생각과 같은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장애도 뚫지 못할 것은 없다는 믿음으로 이해 하셨으면 합니다.

또 그렇게 살려고 기도하며 매달리는 자들을 하나님은 절대로 버려 두지 않으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로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서로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하신 욥이나 바울의 삶의 이야기들이 성경 속에만 있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면 주님께서 구태여 우리에게 모델로 제시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나 가까이를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험으로 라도 주님과 함께 함을 실험해 보십시오…

그분이 명령하시는 것을 의지하면서 시도해 보고 또 해보시는 것은 결국 자신감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로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으십니다. 이 순간에도… 주님은 님의 고민과 행동을 보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운전을 해도 전혀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심이 아니라 의탁입니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십시다.

의로운 고민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주님은 그런 순종으로 의지하는 님을 절대로 홀로 버려 두지 않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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